국제 예양 원리(international comity)를 따를 때 외국 회사들이 자기 나라 법을 따르기 위해 가격 답합을 하였다면 미국 반독점법 위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미국 항소법원 판결이 나왔다. 필자는 2009년과 2012년에 같은 사건에서 국제 예양 적용을 부인한 하급심 판결을 소개하였는데, 이번 판결로써 그 하급심이 뒤집혔다. 이 판결은 같은 사건에서 하급심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 주고 있어서 흥미롭고, 미국 반독점법의 역외 적용을 제한하는 흐름을 강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판결이므로 다시 살펴 보고자 한다.
사건
비타민 C 수입회사들인 원고들은 2005년 1월 중국 비타민 C 제조회사들 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소장에서 원고들은 중국의 대형 비타민 C 제조회사들인 피고들이 비타민 C 가격과 생산량 답합을 함으로써 미국 Sherman Act 1조와 Clayton Act 4, 6조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손해 배상을 구하였다. 조기 기각 신청(montion to dismiss)과 법률심 신청(motion for summary judment)에서 피고들은 사실관계는 다투지 아니하면서 (1) 외국정부의 강압에 의한 행위(foreign sovereign compulsion), (2) 국가행위 이론(the act of state doctrine), 또는 (3) 국제 예양(the principle of international comity)에 의해서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 상무성은 당시 중국법에 따라서 피고들은 가격을 조정 결정해야 했다는 내용을 담은 진술서와 의견서(amicus curiae)를 제출해서 피고들을 지원하였다.
하급심 판결 In re Vitamin C Antitrust Litig., 810 F. Supp. 2d 522 (E.D.N.Y. 2011)
1심을 맡은 뉴욕주 동부법원 판사 Brian Cogan은 국제 예약 주장을 배척하면서 피고들의 신청을 기각하였다. 중국 상무성의 주장을 사실로 믿을 수 없고, 기록에 나타나는 사실과도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뒤에 일부 피고들은 화해를 하였고, 남은 피고들이 배심 재판까지 가서 싸웠지만 결국은 지고, 1억 47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필자가 예전에 올린 글
비타민 카르텔 사건 판결을 통해 본 미국 반독점법과 외국법의 충돌 문제에서 하급심 판결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항소심 판결 In re Vitamin C Antitrust Litig., No. 13-4791-CV, 2016 WL 5017312 (2d Cir. Sept. 20, 2016)
항소심을 맡은 제2항소순회법원은 지방법원이 국제 예양에 따라서 재판권 행사를 자제하지 않음으로써 재량권을 남용하였다고 판단하고, 1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항소법원은 중국 상무성이 한 주장을 사실로 받아 들이면서, 중국 정부는 당시 중국 법률에 따라서 피고들로 하여금 가격을 조절하도록 강제하였고 피고들이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Hartford Fire 판결(
Hartford Fire Ins. Co. v. California, 509 U.S. 764 (1993))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충돌(true conflict)"이 발생한 경우에 해당하고 국제 예양의 원리에 따라서 청구를 기각하였다.
의미
이 판결은 진정한 충돌이 있는 경우에 국제 예양 원리라는 독립적 사유에 근거해서 미국 반독점법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이 판결은 국제 예양를 독립적인 근거로 해서 반독점법 소송을 기각하고 있다. 국제 예양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서, 어떤 법원들은 국제 예양의 원리를 법 해석의 원리로 이해를 하였는데, 이런 입장에 따른다면 미국 법이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해서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은 의회이므로 법원이 따로 국제 예양 원리를 고려할 수 없다. 이와 달리, 반독점법에 따른 청구 원인과 재판 관할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국제 예양 원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반대 입장도 있는데, 이 판결이 이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다.
둘째 이 판결은 외국 법과 미국 반독점법 사이에 진정한 충돌이 있는지, 다시 말해 외국 기업이 그 나라 법과 미국 반독점법을 동시에 지킬 수 없는 상태에 놓였는지라는 기준 하나만을 가지고 국제 예양을 판단하고 있다. 이와 달리 외국 법과 충돌하는 정도, 관련자들의 국적, 외국에서 구제 받을 수 있는 가능성 같은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국제 예양을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Timberlane Lumber, Mannington Mills).
앞으로도 국제 예양 원리에 따라서 미국 반독점법 소송이 기각되는 사례들이 더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이 사건이 발생한 뒤인 2008년에 중국도 담합 행위를 금지하는 반독점법을 제정하였으므로 중국법과 미국 반독점법 사이에 진정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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