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6, 2008

회사 홈페이지상의 공지를 통한 서비스이용계약의 변경


오 랜 전에 가입을 해두고 최근에는 거의 접속하지 않는 한국 웹사이트로부터 약관 변경 고지라는 취지의 제목이 달린 이메일이 날아왔다. 그 사이트는 거의 이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이메일을 휴지통으로 날려 버렸지만, 궁금증이 생겼다. 이메일로 통지가 되었지만 내가 승낙을 하지 않은 약관 변경은 효력이 있을까? 휴면 가입자에 불과한 나로서는 약관 변경이 효력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게는 개정된 약관의 효력 유무가 회사의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잠재적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만일 소비자집단소송이 빈번하게 제기되고,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징벌배상(punitive damage)을 내릴 수 있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이라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 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체결되는 계약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회사들도 마찬가지인지, 유능한 사내 변호사들을 거느리고 있고 쟁쟁한 로펌들의 자문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들조차도 허술하게 인터넷을 통해 계약을 체결했다가 그 계약을 둘러싸고 분쟁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가끔 접할 수 있다. Apple, Adobe 같은 회사도 이용계약에 관한 고객의 항의를 받고서야, 뒤늦게 이용계약에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계약을 수정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다시 인터넷을 통한 계약의 변경 문제로 돌아가면, 미국 제9순회재판소(the Ninth Circuit Court)는 Douglas v.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for the Central District of California 사건에서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에 관해 의미있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Douglas 사건의 쟁점은 서비스 제공자가 수정된 계약 조항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만으로 계약을 개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계약의 체결이나 수정을 위해서는 당사자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전통적 계약법 이론에 근거해서, 수정된 계약 조항을 회사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행위는 계약수정의 청약(offer)에 해당하고, 상대방의 승낙이 없는 이상 계약 수정은 고객을 구속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 사건은 법원이 판결문의 말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동일한 쟁점에 관해서 연방 항소법원 수준에서 판단이 내려지는 첫번째 사건이었다. Douglas 사건의 실질적 상대편 당사자인 Talk America는 오프라인 장거리전화 서비스 제공자이고, 계약도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지만, 계약의 수정을 위한 고지는 Talk America의 회사 홈페이지에서만 이루어진 이 사건은 오프라인 계약을 온라인을 통해 수정하려고 한 사건으로, 최초 계약과 계약 수정이 모두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진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뒤에서 보듯이 이 판결은 체결과 수정이 모두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계약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법리를 밝히고 있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원고인 Joe Douglas는 America Online(AOL)과 장거리 전화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였다. 얼마 후, 실질적 피고인 Talk America는 AOL로부터 장거리 전화 사업을 인수해서 계속 수행하였다. Talk America는 전화 서비스 계약에 4 개 조항을 추가하였다:(1) 추가 서비스 이용 요금, (2) 집단소송에 관한 유보 조항, (3) 중재 조항, (4) New York주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조항. Talk America는 수정된 계약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게재하였다. 하지만, Douglas의 주장에 따르면, Talk America는 개별 통지는 하지 않았다. 계약 수정 사실을 모른 채로 Douglas는 4년간 Talk America의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였다.

뒤늦게 일방적 계약 수정 사실을 알게 된 Douglas는 집단소송을 제기하였고, Talk America는 수정된 계약 중에 포함되어 있던 중재조항에 근거해서 중재회부를 신청하였다. 지방법원은 Talk America의 신청을 받아들여, 중재 회부 결정을 하였고, 이 결정에 대하여 Douglas가 이의를 제기하였다. 참고로 말하면, 미국 Federal Arbitration Act는 중재회부신청을 거절하는 법원 결정에 대해서는 중간 불복(interlocutory appeal)을 허용하지만, 중재회부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에 대해서는 중간불복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는 항소가 아니라, 상급법원이 하급법원에 중재신청 기각 결정을 내리라는 명령을 하는 직무집행명령(writ of mandamus)을 신청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판결의 피고는 실질적 피고인 Talk America가 아니라, 중재 회부 결정을 내린 법원이 되었다.
제9 순회법원은 Douglas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전통적 계약법 이론에 근거해서 Douglas는 수정된 계약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수정된 계약의 효력은 Douglas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밖에도 법원은 다음과 같은 법리를 밝혔다. (1) 계약의 당사자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 없고, 다른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2) Talk America가 말하는 수정된 계약의 게시는 계약 수정에 관한 청약(offer)에 불과하고, 상대방이 승낙할 때까지 상대방을 구속하지 못한다. (3) 다른 상대방이 수정된 계약 내용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계약 수정에 관한 청약은 동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사점]
이 판결은 유사한 사건의 해결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지만, 한편으로 여러 미해결 과제들을 남겨 두고 있다.

  • 웹사이트상 계약수정 내용 고지를 통하여 계약이 수정될 수 있다는 사전 합의가 존재하는 경우

Douglas 사건에서 원 계약에는 웹사이트 고지를 통해 계약을 수정할 수 있다는 합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Douglas 사건은 엄밀히 보면, 계약의 수정 방법에 관한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사건이다.

만 일 개정전 계약에 사업자는 그 웹 사이트에 수정할 계약 내용을 게재하는 방법으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수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 사건의 결론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사전 합의에 따른 계약 수정이 아마도 일정 범위에서는 유효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유효하게 상대방을 구속하지는 못한다. 사전에 웹사이트를 통한 고지로 개별 통지를 대신한다는 합의 자체를 모두 무효라고 할 수 없겠지만, 웹사이트를 통한 고지는 불완전한 고지방법임을 부정할 수는 없고, 계약 수정에 대한 '동의'를 충분히 대신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계약 수정 공지가 웹사이트 속에서 찾기가 어렵게 배치되어 있거나, 관련되는 서비스의 속성상 고객이 웹사이트에 자주 접속하지 않는다거나(Douglas 사건에서와 같이, 전화 서비스 이용자가 통신사업자의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계약수정 공지를 확인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변경되는 계약 내용이 고객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예상할 수 없었던 조항일 경우에는 웹사이트를 통한 고지의 사전 합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계약 수정이 상대방을 구속하는 효력이 인정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사전 합의된 계약 수정 방법의 유효성에 관해서는 Sandra L. Badie v. Bank of America 사건을 참고해 볼 수있다. 이 사건은 은행이 신용카드 가입 고객에게 계약수정 내용을 우편으로 통지하는 방법으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합의가 사전에 있었고, 은행이 그 합의에 따라 우편 통지를 통해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정하여 그 수정된 계약의 유효성이 다투어진 사건이다. 즉 이 사건은 Douglas 사건과 달리 고객에게 우편을 통해 실제로 개별 통지가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사전 합의에 따라 우편 통지를 하는 방법으로 일방적인 계약 수정이 가능하지만, 그러한 계약 수정 권한은 신의와 공평의 원리에 따라 제한을 받고(constrained by the covenant of good faith and fair dealing) 계약 상대방이 계약 체결 당시에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던 범위를 벗어난(not within the reasonable contemplation of the parties when the contract was entered into) 수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 어떤 방법으로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가?
Douglas 사건에서 웹사이트 고지를 통한 일방적 계약 수정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많은 소비와 구매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대에서 소비자를 일일이 찾아가 동의를 받아 계약 내용을 수정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더라도 100% 동의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온라인을 통한 계약 수정은 편리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지만,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인터넷 서비스나 인터넷의 이용은 그 서비스의 내용이나 방식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 방법만 유효한 계약 수정방식이라고 고집할 수 없다. 대부분의 온라인을 통한 거래에서 사업자들은 오프라인으로 고객에게 계약 수정을 통지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나, 주소 등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못고, 전자우편 주소를 알고 있더라도 전자우편 주소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고, 고객이 그 전자우편 계정으로 도달하는 이메일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온라인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을까? 각 서비스의 특성, 고객의 특성, 웹사이트의 특성 등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 볼 수 밖에 없다. 아래에서는 서비스 유형에 따라서 도입해 볼 수 있는 계약수정 방법을 제안해 보려고 한다.
    • 로그인이 없이 이용하는 서비스
사용자 등록이나 로그인이 필요없는 서비스는 사업자가 홈페이지에 서비스 이용조건(terms of use)을 게시하고, 고객의 이용은 그 이용조건에 따른다고 명시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객이 그러한 이용조건의 승락할 경우에만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서비스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이용조건이 구속력을 갖는다. Douglas 판결의 취지에 따른다면, 이러한 서비스의 경우에도 적절한 방법으로 고객에게 계약수정 내용이 명확히 고지되어야만 계약수정이 유효하다.

계약 수정을 게시할 때는,최종 개정일자를 명시적으로 표시하고, 개정된 이용조건 내용의 전부 또는 중요 요지를 개정일자별로 정리해서 게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용조건에 매번 방문시마다 별도의 새로운 이용계약이 성립한다는 점을 규정한다면, 종전 계약의 적절한 고지 없는 수정이라는 공격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 등록,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
등록,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는 반복되는 로그인 과정에서 이용계약 수정 사항에 관한 동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계약 수정을 통지하거나 동의를 얻기가 비교적 쉽다. 또 사업자가 이용자의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등 연락처를 확보하고 있다면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사업자는 이용계약 속에 로그인 과정에서 동의를 받거나, 이메일을 통해 계약 수정 사항을 통지할 수 있다는 계약수정 방법에 관한 조항을 두고, 기술적으로는 쿠키를 심거나 접속 정보를 보관하는 등 사용자가 새로운 이용계약에 동의하였다는 점을 확인, 보존, 추적할 수 있는 조치를 개발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 오프라인 서비스의 홈페이지
Douglas 사건이 오프라인 서비스 사업자가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계약 수정 통지가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런 오프라인 서비스의 이용자는 많은 경우에 사업자의 웹사이트에 접속할 이유가 없거나, 매우 드물게 접속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웹사이트 상의 고지만으로는 부족하고, 오프라인 상에서 개별 통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Bandie 사건에서 법원은 일방적으로 변경된 계약 조건이 원래 합의된 사항과 관련이 있어서 고객이 변경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구속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앞선 판결례들을 인용하면서 밝히고 있다. 따라서, 고객의 개별 승낙을 받으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우편 등을 이용한 개별 통지를 해야 한다. 명시적 승낙을 받지 못하였더라도 실제로 통지가 이루어지고, 그 통지 이후에도 고객이 이용을 계속한다면, 계약 조건 변경을 알고서도 이용을 계속하는 행위가 묵시적 동의를 의미한다는 주장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Douglas 사건에서는 Douglas가 개별 통지를 받았다는 입증이 없었기 때문에, 개별 통지를 전제로 하는 이 방어방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별 통지가 이루어졌더라도 고객의 기대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신의와 공정성을 위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시험을 거쳐야 구속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은 앞서 밝힌 바와 같다.
    • 웹사이트 운영정책의 변경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은 개인정보보호정책, 저작권보호정책과 같은 서비스운영과 갈은 정책을 이용계약과는 별도로 수립하여 집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용계약과는 별도로 작성, 운영되고, 계약이라는 제목 대신에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정보, 사생활과 같은 고객의 중요한 권리나 이익에 관해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기대 이익을 해치거나, 통지-동의라는 계약 수정 절차를 회피하려고 정책의 형태를 취해서는 안될 것이다[State v. San Francisco Sav. etc. Soc.(1924) 66 Cal. App. 53 참조, 은행고객과 맺은 계약에 은행은 정관세칙(bylaw)을 고객의 동의 없이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더라도, 휴면계좌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정관세칙 개정은 고객에 대해 휴력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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