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7, 2011

미국 정부, 해외부패방지법을 외국 기업에 적극 적용

세계적 물류회사 1개와 그 물류회사의 고객인 6개 에너지 회사가 2010년 11월 4일 미국 정부와 해외부패방지법 (Foreign Corrupt Practice Act) 위반으로 모두 약 2억 3,650만 달러를 납부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는 법무부 (DOJ) 및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SEC)와 이루어졌고, 합의 금액 가운데는 형사 벌금(criminal fine) 1억 5,650만 달러와 민사적 이익 환수금 (disgorgement), 이자 그리고 징벌금 (penalty) 8천 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 법무부 보도자료 ). 그 7개 회사들 가운데, Panalpina, Pride, Shell은 각각 역대 FCPA 사건 제재 금액 순위에서 7위, 9위, 10위에 오르게 되었다.

세관 통과 목적으로 외국 공무원들에게 뇌물 제공

이 사건 중심에 있는 Panalpina는 스위스의 물류 회사이다. 그 회사는 전세계 80개 나라에 500여 사무실을 가지고 있고 1만 4천명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스위스 증권시장에 상장된 물류 분야 상위 기업 가운데 하나이다. Panalpina는 에너지 회사들을 위해 원유시추장비와 같은 장비들을 세계 여러 나라도 운송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Panalpina는 그 과정에서 세관 통과가 지연되지 않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명목 등으로 나이지리아, 사우디 아라비아, 알제리아, 카자흐스탄과 같은 나라 공무원들에게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뇌물 약 2,700만 달러 상당을 제공하였다고 인정하였다.

Panalpina의 고객들인 6개 에너지 회사들에게는 Panalpina가 외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행위에 공모하거나, 또는 화물운송료 전부 또는 그 가운데 일부가 뇌물로 전달되리라는 점을 알고도 운송료를 지급하였고, 그 과정에서 회계장부를 허위로 기재하였다는 혐의가 적용되었다. 6개 에너지 회사들에는 Royal Dutch Shell 같은 석유 회사와 Nabors Industires Ltd, Schlumberger Ltd, Transocean Ltd와 같은 에너지 개발 서비스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외주 업체의 행위에 대해 고객 회사에까지 책임을 확대

이 사건은 Royal Dutch Shell과 같은 세계적 회사들이 막대한 벌금을 부과 받았다는 사건의 규모에서뿐 아니라, 실체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외주 업체의 뇌물제공 행위에 대해 고객 회사에게까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책임을 확대하였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에너지 회사들을 각종 장비를 운송해 주도록 Panalpina에게 위탁하였고, 뇌물을 직접 제공한 것은 에너지 회사들이 아니라 운송회사인 Panalpina이다. 과거에도 외주 업체가 뇌물을 제공한 행위에 대해 고객 회사에서 해외부패방지법을 적용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뇌물을 직접 제공한 외주 업체는 개인이나 소규모 업체,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Panalpina는 물류 업계에서 가장 크고 잘 알려진 선도 기업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고, 스위스 증권 시장에 상장까지 되어 있는 회사이다. 이처럼 크고 잘 알려져 있는 회사와 거래할 때는 그 회사 내에 준법감시 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믿고 거래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같은 대규모 회사들에게 업무를 위탁하거나 거래하는 경우에까지도 고객 회사는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을 막기 위해 외주 업체가 하는 행동을 감독 감시해야 하는가, 그렇지 못하면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는 의문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정부, 외국 회사들에게 FCPA 적극 적용

이 사건을 통해 미국 정부가 미국 회사가 아닌 외국 회사들에게도 해외부패방지법을 적극 적용, 집행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었다. 미국 정부는 해외부패방지법을 미국 회사뿐 아니라, 주식이 미국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외국 회사 (issuer) 또는 미국 내에 상당한 사업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 (domestic concern)에게도 매우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벌금액 순위를 보면, 벌금액 상위 10개 회사 가운데 8 개 회사가 미국 회사가 아닌 외국 회사이다. 벌금 상위 10개 회사는 다음과 같다 (출처: FCPA Blog).

1. Siemens (독일): 8억 달러, 2008년.

2. KBR / Halliburton (미국): 5억 7,900만 달러, 2009년.

3. BAE (영국): 4억 달러, 2010년.

4. Snamprogetti Netherlands B.V. / ENI S.p.A (네덜란드/이탈리아): 3억 6,500만 달러, 2010년.

5. Technip S.A. (프랑스): 3억 3,800만 달러, 2010년.

6. Daimler AG (독일): 1억 8,500만 달러, 2010년.

7. Panalpina (스위스): 8,180만 달러, 2010년.

8. ABB Ltd (스위스): 5,830만 달러, 2010년.

9. Pride (미국): 5,610만 달러, 2010년.

10. Shell (미국/네덜란드): 4,810만 달러, 2010년.

해외 사업에서 투명서 제고와 준법 노력 필요

지금 세계 경제에서는 에너지와 자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전쟁처럼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와 같은 신흥 국가들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원 확보 경쟁은 점점 치열해 지고 있고 한국 기업들도 그 경쟁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문제는 쉽게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은 이미 모두 개발이 끝났거나, 이미 주인이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와 자연자원을 찾기 위해 기업들은 점점 오지로까지 가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이들 지역은 법과 제도가 투명하지 못하고, 부정부패가 심한 경우도 적지 않다. 국제투명기구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부패 인식 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를 보면 조사된 178개 국가들 가운데 이 사건 회사들이 뇌물을 제공한 나라들인 나이지리아는 134위, 알제리아는 105위, 카자흐스탄 105위로 청렴도가 하위권에 속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조금 높아서 50위이다(참고로 한국은 39위이다). 이들 나라에서 사업을 하자면 부패한 공무원과 상대를 해야 하고, 뇌물을 제공하지 않으면 세관 통과에서 비교적 단순한 절차조차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 경우에 기업들은 사업 진행 차질을 막기 위해서 뇌물을 쓸쩍 찔러 주고서라도 일을 처리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해외부패방지법을 적극적으로 역외 적용하고 있고, 부패방지를 위한 국제 협력과 각 나라의 노력이 강화되는 추세를 볼 때 해외 사업 추진에 있어서 투명성을 높이고 반부패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은 분명해 지고 있다.

주제어: 해외부패방지법, FCPA, Foreign Corrupt Practice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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